[일다] 휠체어 시위를 휠체어로 막는 발상에 대하여
작성일 : 2025-10-01
조회수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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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시위를 휠체어로 막는 발상에 대하여 능력, 돈, 외모, 가족…익숙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생각 Moon(내가 활동지원 서비스하는 ‘이용인’이다)과 서울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한 중년 남성이 Moon의 휠체어 손잡이를 마치 지하철 손잡이처럼 천연덕스럽게 잡고 있었다. Moon이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언어장애가 없는 내가 말했다. “선생님. 휠체어는 장애인에게 몸이에요. 그렇게 잡으시면 안 됩니다.” 그는 손을 떼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과 표정은 달랐다. ‘그깟 휠체어 손잡이 좀 잡았다고 별스럽게 구네.’ 정도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수동 휠체어 이용자는 아무런 양해도 없이, 돕는다는 명분으로 혹은 위험할까 봐 ‘옮겨지’거나 ‘이동당’한다. 전동 휠체어 이용자도 ‘치워달라’ 요청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를 일시적으로 분노하게는 해도 좌절하게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좌절할 때는 이런 장면들 앞에서다. 서울대병원, 장애인 의무고용률 안 지키고 벌금으로 대체하는 공공기관 안내 인력까지 없애고 모든 접수결제를 앱과 키오스크로… 지난해 12월 31일, 국립 서울대학교병원 정문. 장애인 시위대가 병원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서울대병원은 그동안 법이 정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기보다 벌금 내는 걸 선택해왔다. 참고로 2024년 기준, 서울대병원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아 납부한 부담금이 20억 5,400만원으로, 공공기관 중 1위이다. 또한 2019년 대한외래센터를 개원한 이후, 안내 인력을 없애고 앱과 키오스크로만 모든 접수와 결제 업무를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휠체어 장애인들이 사용하지 못하는 키오스크로만 진료 접수를 받는 것은 이들에 대한 진료 거부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이 “법을 지켜라”, “장애인 전담 창구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시위 당일, 병원 측은 장애인들의 시위를 ‘성공적으로’ 막았다. 어떻게 했냐고? 병원에 있던 휠체어를 병원 입구에 줄지어 세워 ‘휠체어 바리케이트’를 쳐서 휠체어 장애인들의 진입을 차단한 것. ![]() 휠체어로 휠체어로 막고, 이동 보조기구로 장애인 이동을 막는다? 또 하나의 장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탑승 시위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지하철을 타려는 휠체어 장애인을 휠체어와 강제로 분리하고, 전동 휠체어를 수동으로 강제 조작해 지하철 밖으로 끌고 나간다. 서울교통공사는 ‘시민’으로서 지하철을 타겠다고 ‘포체투지’(오체투지가 불가능한 장애인들이 기어가며 하는 불복종 행동)를 하는 장애인들의 시위를 진압할 때 안전발판을 애용해왔다. 안전발판은 승강장과 전동차 간격이 멀어 휠체어 바퀴가 빠지는 사고를 막기 위해, 승강장과 전동차를 잇는 간이 이동 보조기구이다. 휠체어로 휠체어를 막고, 이동 보조기구로 장애인의 이동을 막는 이 엽기적인 장면은 언론 뿐 아니라 SNS에서도 회자되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서울교통공사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을 너무 잘 보여주네.” 등의 우려와 비판이었다. 일본에서 열차에 탑승하는 장애인을 직원이 발판을 이용해 지원하는 사진을 올리고 “난 저게 발판 제 용도로는 쓸 수 없는 건 줄 알았어.”라며 냉소적으로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내용은 각자 달랐지만, 공유하고 있는 감정은 좌절감이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다는 삶의 존엄과, 평소에 의심하지 않고 딛고 사는 사회의 안전망이, 내가 취약해진다면 갑자기 꺼져버리는 씽크홀 같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직시했기 때문이 아닐까. 반복된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더이상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 하거나 기대하기를 멈추게 된다. 각자 생존을 연명하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적 몸’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강제로 분리된다. 분리된 몸들의 사회에서는 휠체어를 양해 없이 만지는 것이 다른 이의 몸에 대한 침입이라는 지적이나, 휠체어나 보조기구를 장애인을 막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휠체어 당사자뿐 아니라 이 사회에도 폭력이라는 지적이 외계어같이 들릴 것이다. 신유물론 ‘육체는 본질적으로 타인과 얽혀있다. 우리는 관계적 존재’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신유물론 페미니즘 연구자인 캐런 바라드(Karen Michelle Barad)는 사물들이 본질적으로 확정된 경계나 속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관계적 존재론’을 주장한다. 바라드는 “신체 건강함(Able-Bodiedness)은 존재의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몸’(Disabled)으로부터 구별하는 경계 만들기 실천을 통해 함께 구성되는 육체화의 특정한 형태”라고 말한다. “신체 건강한 사람들(The Able-Bodied)이 자신들의 존재를 장애인들(The Disabled)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육체화 자체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얽혀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노쇠해가는 부모님을 부축하며,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병상에 누운 사랑하는 이를 위로하며 우리가 서로 얼마나 깊이 이어져 있는지, 또 우리의 몸이 독립적이고 경계가 분명한 ‘개체’라는 인식이 실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공공기관은 시민들의 상호연결성을 보장하라 서울교통공사는 하루 7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이다. 국립 서울대병원 역시 정부(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이 병원이 최첨단 의료진과 기술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로부터 공공의료 서비스와 연구 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가 이들 기관에 자원과 권한을 위임한 이유는 시민들의 상호연결성을 보장하고 강화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다양성을 보장하며,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안전발판은 지하철과 승강장을 잇는 도구만이 아니다. 휠체어도 단순히 장애인의 보행보조기구가 아니다. 이들 기구는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오는 통로이며, 장애와 비장애중심 사회를 잇는 고리이다. 1974년 서울 지하철 개통 이후 장애인을 태우지 않고 달려온(1988년 패럴림픽 당시 설치된 리프트는 목숨을 걸어야 탈 수 있었다) 지난 50년간의 폭주와, 국립 서울대병원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장애인 환자에게 배제와 차별의 짐까지 지운 과거에 대한 반성이며, 다시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공공의 약속이다. 안전발판과 휠체어는 차별과 배제의 시대에서 평등과 민주주의 시대로 건너가는 교두보이다. 두 기관은 회답해야 한다.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어디에 쓸 것인가.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이 연결의 교두보를 더 단단하게 연결하는 데 쓸 것인가, 끊어내고 무너뜨리는데 쓸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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