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왜 우리는 작고 가벼운 전동휠체어를 만나기 어려운가 (김양희)
작성일 : 2025-08-13
조회수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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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작고 가벼운 전동휠체어를 만나기 어려운가 – 국산 보조기기 다양성의 빈곤과 급여 제도의 한계
작고 가벼운 전동휠체어는 없을까? 주위의 동료 장애인들의 이동 보조기기를 보면서 자주 하는 생각이다. 이 질문은 단지 제품에 대한 호기심이나 선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작고 가벼운 전동휠체어는 장애인의 이동 자율성, 생활 반경, 사회참여 기회와 직결된 필수 조건이다. 휠체어는 단순히 바퀴가 달린 이동 수단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 전반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시장 현실은 이러한 사용자들의 절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에 유통되는 전동휠체어 및 전동스쿠터의 대부분은 크고 무거우며 구조가 복잡한 대형 모델이다. 이러한 제품들은 넓은 공간에서는 그나마 무리가 없지만, 일상적인 실내 환경이나 좁은 골목길,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오히려 불편과 제약을 초래한다. 이 같은 상황은 단순한 기계 설계의 한계나 기술력 부족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면에는 국산 보조기기의 획일화된 생산 구조, 보조기기 급여 제도의 성능 중심 기준, 그리고 장애인의 사용 실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복지 행정의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왜 우리는 작고 가벼운 전동휠체어를 만나기 어려운지를, 보다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관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국산 보조기기의 생산 구조: 대형 모델 중심의 획일화 전동보조기기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첫 번째 장벽은 바로 생산 구조다. 국내 전동휠체어 시장은 대부분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술력과 자본, 생산 설비, 연구개발(R&D) 여건 등에서 대기업에 비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기업들은 가장 수요가 많고 보편적인 제품군, 즉 '표준형 대형 모델' 중심으로 생산을 집중하는 전략을 취한다. 한마디로 '한 가지 모델로 최대한 많은 수요를 커버하자'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생산 구조가 장애인의 신체 특성이나 생활 환경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실내 이동이 많거나, 협소한 주거 환경에 거주하거나, 혼자 기기를 접고 들어야 하는 사용자의 경우, 대형 기기는 오히려 생활의 걸림돌이 된다. 그럼에도 소형화된 모델, 혹은 접이식 구조나 경량 설계가 반영된 제품은 생산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거나, 만들어지더라도 단가 문제로 유통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결국 한국의 전동보조기기 시장은 장애인의 다양성을 외면한 채 획일화된 대형 모델 중심으로 고착되어 있다. 복지급여 기준의 왜곡: 성능 중심 지원 구조 복지급여 제도, 특히 보건복지부가 설정한 보조기기 급여 기준이 실사용자의 필요보다 기기의 물리적 ‘성능’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급여 기준은 배터리 용량, 주행 거리, 모터 출력 등 측정 가능한 수치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표준화와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라는 행정 편의에는 부합하지만, 실제 사용자들이 원하는 ‘가볍고 간편한 기기’, ‘실내나 일상생활에 적합한 기기’는 종종 이 기준에서 ‘성능 부족’으로 간주되어 급여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지원액이 낮게 책정된다. 반면 상대적으로 덩치가 크고 배터리 용량이 큰 고성능 모델은 지원을 받기 용이하다. 그 결과 실제 생활 반경이나 사용 습관과는 무관하게, ‘복지급여 기준’이 제품 선택을 좌우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진다. 사용자는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제품을 받게 되거나, 반대로 자신에게 맞는 기기를 직접 자비로 구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중증 장애인의 경우 자비 부담이 큰 장벽이 되며, 이는 곧 이동권 제약으로 이어진다. 시장과 제도의 공백: 사용자의 선택권 제한 실제로 해외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전동보조기기가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도시형 환경에 적합한 초소형 접이식 전동휠체어가 주류를 이루며, 유럽과 미국에서도 자동차 트렁크에 실을 수 있는 경량형 모델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들 기기는 단순히 '작은 크기'에 그치지 않고, 보관이 용이하고 실내외 겸용으로 설계되어 있어 사용자 편의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문제가 달라진다. 수입제품의 경우 고가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 보조기기 급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일반 장애인은 가격 장벽으로 인해 접근조차 어렵다. 또 국내 제도는 ‘전동보조기기 급여 제품 등록’을 위해 일정 수준의 사양과 인증을 요구하는데, 해외의 소형 제품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급여 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제도와 시장이 동시에 사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구조다. 통계적으로도 이런 제한은 확인된다. 2023년 보건복지부의 보조기기 급여 수급자 통계를 보면, 전동휠체어 수급자의 90% 이상이 대형 모델을 선택했다. 이는 대형 모델이 압도적으로 선호된다는 뜻이 아니라, 급여 대상 기기 대부분이 대형 모델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상담 현장에서는 “작고 가벼운 건 급여 안 되나요?”, “이건 너무 커고 무거워서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내릴 때 많이 힘들어요”라는 말이 반복된다. 선택지가 없다는 현실은 선택권이 없다는 말과 같다. 왜 한국에서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가 덩치가 크고 무겁게 제작할까? 한국의 전동보조기기 시장이 크고 무거운 모델 위주로 고착된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물리적 환경이 지닌 제약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대중교통이나 보행 환경이 완전한 무장애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사, 단차가 있는 승하차 구조, 경사로나 점자블럭의 부실 시공 등이 여전히 곳곳에 존재한다. 이로 인해 장애인은 외출을 결심할 때, 짧은 거리를 가더라도 긴 시간 동안 외부 환경에 노출되고, 그 시간 내내 전동보조기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잦다. 당연히 배터리 용량이 크고, 무게 중심이 안정된 모델이 더 ‘안전한 선택지’로 여겨진다. 이러한 사용 환경은 곧 기기의 크기와 무게 증가로 이어진다. 여기에 도로와 인도 환경의 열악함 또한 크고 튼튼한 기기를 선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인도의 턱, 경사로, 깨진 보도블럭, 미끄러운 표면 등 한국의 도로 인프라는 전체적으로 고르지 못하고, 장애인 이동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이 같은 환경에서 작고 가벼운 전동휠체어는 흔들림이나 전복 위험이 크고, 고장의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많은 사용자가 작은 바퀴나 가벼운 프레임의 기기를 사용하다 파손을 경험하거나, 경사진 도로에서 미끄러지는 등의 사고를 겪는다. 결국 현실의 위험 요소들이 크고 튼튼한 구조의 기기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동권은 자율권이다: 작지만 큰 변화의 필요성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은 단지 바퀴 달린 기기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이동권 보장이란, 그 기기가 사용자의 생활방식에 맞춰져 있고,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제도는 여전히 “기계 중심”, “기능 중심”의 시각에 머물러 있으며, 사용자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술적으로 소형·경량 전동기기의 생산은 이미 가능하다. 문제는 그것이 복지급여 체계 안에서 소외되고 있고, 생산과 유통에서 외면받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란 ‘보조’하는 것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바를 지원하는 것이지, 정해진 사양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필요한 기기를 선택할 수 없는 복지 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 장애인의 삶은 단순한 숫자나 규격으로 환산될 수 없다. 그 삶은 각기 다르고, 그만큼 필요한 기기도 다르다. 전동휠체어 하나를 두고도 어떤 이는 무게와 크기 때문에 집 밖을 나서는 것이 함겹고, 어떤 이는 복지급여 기준 때문에 필요한 제품을 받지 못한다. 결국 이동권의 문제는 자율권의 문제이며, 나아가 인간다운 삶의 조건과 직결된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 제품은 기준에 맞지 않는가'가 아니라, '기준이 왜 이 제품을 품지 못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작고 가벼운 전동휠체어는 단지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사회의 문제다. 더 많은 선택이 가능하도록, 더 많은 삶이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는 지금 복지의 방향을 다시 그려야 한다. 작지만 꼭 필요한 변화, 그것이 진정한 복지의 출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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